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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교수동향) '기독교세계 2026년 7-8월호' 게재글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교인들의 심리 - 교회 안의 권위와 침묵이 남기는 상처 - ) - 고유식 교수

작성자 기독교학과

등록일자 2026-07-01

조회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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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교인들의 심리

 

- 교회 안의 권위와 침묵이 남기는 상처 - 

 

 

어느 공동체나 리더가 존재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리더에게 일정부분 권위와 권한을 부여한다. 교회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의 몸 된 공동체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교인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리더, 공동체가 혼란에 빠졌을 때 중심을 잡는 리더, 중요한 순간에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책임 있게 제시하는 리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인들은 리더 역할을 목회자가 해주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목회자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존중으로 그의 리더십을 지지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시작되기도 한다. 목회자를 향한 존중과 신뢰가 어느 순간 지나친 의존으로 기울 때, 건강한 리더십이 ‘비판하기 어려운 무엇’으로 굳어질 때, 교회 공동체는 미묘한 긴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의 말에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어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이 미성숙한 신앙인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에서는 리더의 통제적 태도가 누구의 문제 제기도 받지 않은 채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우리는 흔히 ‘목회자가 너무 독단적이다’ 혹은 ‘교인들이 너무 의존적이다’라고 쉽게 말한다. 솔직히 그런 측면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교회 안의 권위 문제는 그렇게 한쪽의 책임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 어떤 목회자가 처음부터 권위적이었을까? 사실 권력과 달리 ‘권위’는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할 수 없고, 오직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여받아야만 하는 요소다. 다시 말해 목회자의 권위는 교인들의 자발적 의지에 의해 형성되며, 동시에 교인들은 목회자에게 신앙적 지도와 안내를 기대한다. 

건강한 교회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슨 이유로 교인들이 강한 리더를 선호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목회자에게 의존하게 되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목회자의 생각과 판단에 기대게 되는 그 심리적 구조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회 안의 권위 문제는 어느 한 사람의 성격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 안에는 불안과 의존, 죄책감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것은 목회자와 교인 모두가 함께 마주해야 할 마음의 배경이다. 

 

1. 강한 리더십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교인의 마음

어느 교회의 한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목사님이 삶의 지침을 주시면 정말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제가 결정해서 움직이는 건 항상 불안하거든요. 괜히 잘못 판단해서 하나님 뜻을 거스를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의 짧은 고백 안에는 교회 안의 권위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누군가에게 강한 리더가 부담스럽고 불편한 존재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실존적 불안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일 수 있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에는 선택뿐 아니라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책임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저항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다. 특히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틀리면 안 된다’는 마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누가 분명하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정해주는 상황을 더 편안해하고 안전하게 느낀다. 그런 사람에게 강한 리더는 자신이 감당하기 버거운 불안을 대신 짊어져 주는 고마운 존재처럼 다가온다.

교회 안에서는 이 마음이 한층 더 강해진다. 사람들은 교회를 신앙과 구원, 하나님 뜻, 옳고 그름을 다루는 자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판단이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은 단순한 실수의 걱정으로 끝나지 않고, 자칫 신앙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진 교인에게는 대화를 통해 함께 자기 마음을 살피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분별하도록 돕는 리더보다,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알려주어 고민의 무게를 덜어주는 리더가 훨씬 더 의지가 되는 매력적인 존재로 느낀다. 

 

2. 왜 어떤 교인들은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까…’라고 말하는 걸까?

“솔직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목사님이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제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어요. 괜히 말했다가 믿음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두렵기도 하구요.” 교회 안에서 결정해야 할 중대 사안이 있었다. 다소 무리한 결정이라고 느끼며 우려를 표하는 교인들이 몇몇 있었지만, 교인들 대부분은 목회자가 단독으로 결정하고 처리하는데 동의했고, 그대로 실행됐다. 이 과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교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런 장면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실제로 교회에서는 의견이 없어 침묵하는 경우보다, 의견이 있음에도 말하지 못해 침묵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이면에는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운 마음, 괜히 나서서 문제를 만드는 사람처럼 보일까하는 우려, ‘혹시 내가 영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닐까’하는 자기 의심이 자리한다. 그래서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까…’라는 표현은 존중의 언어면서, 동시에 자기 생각을 잠시 내려놓게 만드는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한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꼭 목사님께 여쭤봐요. 제가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야 안심이 됩니다. 혼자 결정하면 괜히 불안해요.” 누구보다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 온 이 청년의 마음 한켠에는 ‘혹시 틀릴까 봐’, ‘인정받지 못할까 봐’, ‘누군가를 실망시킬까봐’라는 긴장이 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목회자에게 이 부정적 감정들을 투사하며 정신적 안정을 찾고자 했다. 

이런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목회자에 대한 의존은 단순히 존경이나 충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그것은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줄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어떤 교인이 특정 리더에게 유난히 매달리거나, 그의 인정에 깊이 기대고 있다면, 그 안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버려지기 싫은 마음, 아직은 혼자 서는 것이 두려운 마음이 함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인들을 대하는 목회자는 어떻게 이들을 대해야 할까? 건강한 권위는 타인의 생각을 무시하거나 묵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하게 하고, 더 책임 있게 분별하도록 돕는다. 반면 미성숙한 권위는 질문을 막고, 고민을 가볍게 여기게 하면서,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수동적인 자리에 머물게 한다. 처음에는 그런 권위가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질문할 필요도, 고민할 여지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교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점차 잃게 되고, 공동체는 한 사람의 기분과 판단에 지나치게 흔들리는 자리가 되어 간다. 곧 목회자의 기분과 판단에 지나치게 동요한다.

 

3. 권위가 ‘하나님의 뜻’처럼 느껴질 때...

교회 안의 권위 문제가 다른 공동체에서 보다 한층 더 조심스레 다뤄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리더십의 차원을 넘어 신앙과 양심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상사의 말은 업무 지시로 들린다. 그러나 교회에서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영적 권위를 부여하고, 그에 순종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이기에, 목회자의 말에는 자연스레 영적인 무게가 실린다. 이는 신앙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섬세하게 살펴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 안에서 어떤 교인의 마음에는, 목회자에 대한 비판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 흐릿하게 겹쳐 보이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 마음에 걸리는 일을 겪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한 교인의 고백이다. "제가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계속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참고 넘어가야 하나? 이걸 말하면 내가 교만한 건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내가 대드는 건 아닐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죠."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교인은 생각보다 많다. 상처를 받아도, 어색한 구조를 인지해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도, 마음 한쪽에서는 곧바로 신앙적 자기 검열이 작동한다. ‘내가 더 겸손해야 하나?’, ‘내가 더 순종해야 하나?’, ‘이걸 참는 게 믿음 아닐까?’ 인내와 겸손이 신앙인의 소중한 덕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것이 모든 침묵을 미덕으로 미화할 때, 교회 안에는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조용히 쌓여 가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권위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통해 공동체가 더 깊어진다고 믿는다. 반면 권위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질문이 권위에 대한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면 의도하지 않은 사이 말하는 사람은 문제 인물로 보이고, 침묵하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으로 비치게 된다. 이는 누구의 악의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점검해 보아야 할 공동체적 과제다.

 

4. 강한 리더의 마음 안에도 불안이 있다.

이쯤해서 한 가지 짚어 봐야 할 사안이 하나 있다. 앞서 언급했듯 교회 안의 권위 문제는 교인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목회자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 공동체의 리더라면 자기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완벽하게 다스리기는 어렵더라도, 그것이 자기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면서, 그 고민을 작은 실천으로 옮기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는 목회자에게만 요구되는 무거운 짐이라기보다, 사람을 돌보는 자리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마주하고 있는 과제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권위를 강하게 행사하는 리더들은, 종종 자기 안의 불안을 충분히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더 분명한 통제와 결단을 통해 그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무의식적 선택을 한다. 물론 그가 그렇게 선택한 표면적인 이유는 의식적으로 공동체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불안과 두려움을 권위로 포장된 통제와 지배로 은폐하려는 자기 보호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즉 권위는 공동체를 돌보는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리더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기능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교인들의 반응에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목회자가 있다. 누군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그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다양성이라고 인식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대한 도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공동체 안에 여러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안이 마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그것이 질서의 균열처럼 여겨진다. 그러면 통제의 의지는 자연스레 강해지고, 주변에는 점차 비슷한 결의 의견들만 남게 된다.

이런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결단력 있고 카리스마 있게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작은 비판조차 인격적 공격처럼 다가오는 흔들리는 자존감, 인정받지 못하면 견디기 어려운 깊은 갈망,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모습은 사실 목회자뿐만 아닌, 공동체 내에서 책임이 주어진 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다. 이를 알아차리고 천천히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때, 권위는 자기 보호의 도구에서 공동체를 세우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5. 성숙한 권위와 미성숙한 권위는 무엇이 다를까?

그렇다면 교회 안의 건강한 권위는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권위가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살펴보면 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권위는 사람을 의존하게 만든다. 그 권위 아래에서는 ‘깊이 생각하기보다 따르라’는 분위기가 우세해지고, 당연히 질문은 환영받지 못하며, ‘다름’은 종종 ‘틀림’으로 해석된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길 힘을 조금씩 잃는다. 그런 분위기 안의 공동체에는 자연스레 위축감이 스며든다. 반면 성숙한 권위는 사람을 자라나게 한다. 자신의 말에 무조건 따르도록 만들기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의견을 깊이 경청하며, 공동체원들이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힘을 키워 가도록 돕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위를 절대시하지 않고, 자신 역시 때로는 실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권위 아래에서 교인들은 점점 더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성장해 간다. 

 

6. 교회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목회자와 교인 모두가 권위 문제에 조심하기 위해 우선 실천해야 할 과제는 ‘침묵을 무조건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일’이다. 조용히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평안한 것은 아니다. 순종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다 건강하지도 않다. 어떤 침묵은 믿음의 자리에서 나오지만, 또 어떤 침묵은 두려움 속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어떤 순종은 성숙의 표현이지만, 또 어떤 순종은 관계를 잃지 않으려는 자기 보호일 수 있다. 이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하는 시선이 공동체를 한 걸음 더 성장하게 만든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목회자를 지나치게 이상화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목회자는 존중받아야 할 자리에 있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목회자 역시 실수할 수 있고,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상처와 불안 속에서 반응할 수도 있다. 이 사실을 목회자와 교인들 모두 받아들일 때 오히려 공동체는 더 건강해진다. 목회자를 너무 이상적으로 그리려는 시선은 결국 교인뿐만 아니라 목회자 자신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돌아온다. 인간적인 한계가 인정될 때, 신앙의 자리는 드디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교회 공동체 안에 교인들을 위해, 그리고 목회자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함께 마련해 가는 일이다. 질문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 다른 의견을 말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경험, 실수해도 비난받지 않는 안전함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 공동체 안에서 권위는 진정 사람을 세우는 힘이 된다.

 

7. 참된 권위는 사람을 크게 만든다

지금까지 교회 안의 권위 문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이는 결코 교회 안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사라져야 할 요소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여전히 가르침도 필요하고, 인도도 필요하며, 책임 있는 리더십도 반드시 필요하다. 권위 자체를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권위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우리 모두가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특히 목회자의 권위가 본의 아니게 교인들을 위축시키고 침묵하게 만들고 있다면, 우리는 권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해볼 필요가 있다.  

참된 권위는 사람을 작게 만들지 않는다. 사람을 두렵게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믿음, 책임과 용기가 자라도록 돕는다. 성숙한 리더로서 목회자는 교인들을 자기 곁에 묶어 두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발로 설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고, 함께 걸어간다. 그리고 그 길은 목회자 혼자 걷지 않고, 공동체 전체가 함께 걸어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런 권위를 함께 회복해 갈 수 있다면, 권위는 더 이상 누군가를 억압하는 무게가 되지 않고, 교회를 건강하게, 그리고 성숙하게 세우는 가장 따뜻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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