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 안에서도 질투하게 될까?”
- 교회 내 질투와 경쟁 심리의 원인과 해소 방법 #1 -
교회는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하면서 기도를 통해 사랑과 섬김을 몸과 마음에 새기는 공동체다. 그런데 실제 교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단지 거룩함과 아름다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교인들의 감정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 한 가운데 질투와 경쟁심이 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 내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인정받지 못함에 서운해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열심과 열정을 질투한다. 이러한 감정은 교회 밖보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더 복잡하고 은밀하게 형성되고 작동된다.
교인들은 절대 자기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다른 교인에서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이 사실을 말하는 순간, 다른 교인들로부터 자신은 ‘믿음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투는 자기 안 깊숙이 숨겨진다. 물론 숨겨졌다고 해서 이 질투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은밀하고 더 종교적인 형태로 자기 안에, 더 나아가 공동체 안에 머문다. 따라서 교인들의 질투와 경쟁심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회피하거나 은폐할, 그리고 고쳐야 할 문제로 보기보다는, 이 감정은 인간의 깊은 불안과 결핍, 인정 욕구와 비교 심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1. 질투는 왜 교회 안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인가?
세상은 질투로 가득 차 있다. 직장에서는 승진, 성과, 연봉, 영향력으로 인해 비교가 일어나고, 학교에서는 성적과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이 비교와 경쟁은 사회생활에서 당연시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뇌리 속에 교회는 그런 세속적 비교와 경쟁을 초월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관념과 기대가 강하다. 교인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며, 각자 받은 달란트에 맞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신이 느끼는 질투의 감정을 교회 안에서 드러내기 어렵다.
‘나는 엄두도 못 낼 만큼 저렇게 많은 헌금을 하는 000 권사님이 정말 부럽다’고 표현하거나, ‘왜 목사님은 000 집사만 신임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라고 털어놓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 감정은 곧바로 미성숙하거나 믿음 없는 모습으로 해석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인정하기보다 다른 표현으로 바꿔 말한다. 불편한 마음을 ‘분별’로 포장하고, 서운함을 ‘원칙’으로 둔갑시키며, 경쟁심을 ‘교회를 위한 충정’으로 표현한다.
이 때 교회 안의 질투는 더 복잡해진다. 세상에서 경쟁은 순수하게 경쟁으로 드러나지만, 교회에서는 경쟁이 종교적 언어 속에 은폐된다. 겉으로는 신앙의 열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정 욕구가 내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얼핏 교회를 위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견제하고 싶은 마음이 실린 경우도 있다. 따라서 교회 안의 질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드러난 표면을 넘어, 그 감정이 어떤 심리 배경에서 생겨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2. 질투의 근원에는 미움보다 먼저 상처받은 자기감이 있다
질투는 흔히 타인을 향한 ‘못된 감정’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실제로 질투의 더 깊은 차원에는 타인에 대한 미움만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누군가를 질투함은 그 사람이 단지 눈에 거슬린다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을 보는 순간 내 안의 결핍과 열등감, 인정 욕구가 자극되고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정말 오랫동안 봉사해 온 집사님이 있다. 그는 교회학교, 속회, 교회 내 각종 행사에서 늘 성실하게 일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교회에서 온 젊은 집사가 찬양팀에 서게 되고, 목회자와 자주 소통하며 교회의 여러 봉사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음을 느꼈다. ‘나는 오랫동안 애썼는데 왜 나는 저만큼 인정받지 못했을까?’, ‘이제 봉사를 그만 해야 하나?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네...’라는 감정이 일어났지만, 이를 누군가에게 표현하거나 티도 낼 수 없었다.
사실 그 집사님의 인격에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인정받고 싶은 마음, 보상받고 싶은 기대, 자신의 존재 가치의 상실에 대한 불안이 자신 안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정신분석적으로 질투는 타인을 공격하려는 감정인 동시에, 흔들리는 자기감을 붙들기 위한 반응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끼지 못할 때, 타인의 인정과 위로를 자신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처럼 여긴다. 그때 타인은 축복의 대상이 아닌 위협의 대상으로 바뀐다.
결국 질투는 “저 사람이 싫다”보다 “저 사람 앞에선 내가 초라해진다”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질투를 단지 도덕적 문제로만 다루면 안 된다. 교회 안의 질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상처받은 자기감과 흔들리는 존재 가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3. 교회에서는 질투가 어떻게 더 거룩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가?
교회 안에서 질투는 노골적으로 표현되는 경우 보다는 신앙적 얼굴을 하고 나타날 때가 많다. 바로 이 점이 질투로 인한 갈등과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질투를 느끼는 본인조차 그것이 질투인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성 교인이 있다. 그녀는 다른 교인들이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경공부에도 적극적이며, 교회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교인들이 부럽다’는 자기 마음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신앙생활을 조용하고 겸손하게 해야지, 저렇게 잘난 티를 내면 신앙이 없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신앙생활을 남들 보란 듯이 과시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언제나 순수한 분별만은 아님을 비판하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다. 그 안에는 ‘나는 왜 저만큼 열심을 내지 못하는가’, ‘왜 사람들은 나보다 저 사람을 더 인정하는가”라는 감정이 숨어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특정 교인들과 가까이 하며 그들을 자주 칭찬한다. 그때 교인들 중에는 겉으로는 티내지 않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그 감정은 ‘나는 상처받았다’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고, ‘목회자의 목회 방침이 공정하지 않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차별한다’, ‘목회자는 정치적-금전적으로만 사람을 판단한다’라는 비난의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물론 실제 목회에 있어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자리와 가치가 상실되었다고 느끼는 심리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의 질투는 때때로 험담, 냉소, 비꼼, 거리두기, 소극적 공격, 무관심, 배제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기도제목을 나누자’는 명분 아래 상대의 약점이 퍼지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교회를 위한 충성심’이라는 말이 사실상 경쟁자를 견제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교회를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질투와 경쟁심이 그 배후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행위의 표면만 보지 말고, 그 말과 행동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4. 교회 안의 경쟁은 신앙 경쟁이 아닌, 존재 가치의 경쟁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질투와 경쟁은 단순히 봉사를 더 잘하고 싶다거나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이를 분석해보면 그 심리의 심층에는 ‘존재 가치’에 대한 경쟁이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누가 더 믿음이 좋아 보이는지, 누가 더 헌신적인지, 누가 더 영적으로 보이는지, 누가 더 중요한 자리에 서는지, 누가 더 목회자의 신임을 얻는지가 곧 자기 가치의 척도가 되어 버린다.
이는 특히 한국 교회 문화 속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교회에서는 분명 겸손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는 헌신, 내세워진 봉사, 공식적 직분, 리더와의 관계, 공개적인 인정과 칭찬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교회 내에 팽배하다. 연말에 교인들을 위한 시상의 목록만 봐도 이에 대해 부정하는 교회 공동체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교인들은 하나님의 시선보다 공동체와 목회자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된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보다 교회 공동체원 앞에서의 존재감이 더 중요해진다.
어느 교인이 수년간 별다른 직분 없이 묵묵히 예배를 드려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보다 나중에 온 사람이 직분을 받고, 여러 모임의 리더를 맡았다. 겉으로는 웃으며 축하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 후로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별일 아닌 매우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설교마저 ‘누군가를 겨냥한 것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문제의 시작은 직분 자체가 아닌, 직분을 통해 자기 존재 가치가 확인된다고 믿는 마음에 있었다.
이처럼 교회 내 교인들 사이에서의 경쟁은 역할 경쟁을 넘어, ‘나는 이 공동체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과 연동되어 있다. 그러므로 질투를 없애기 위해서는 타인을 탓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무엇으로 내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의 평가로 자신을 측정할 때, 교회는 쉼의 장소가 아닌 끊임없는 비교와 갈등의 장소로 변할 수 있다.
5. 질투를 정죄하기 전에, 그 감정이 말하는 상처에 대해 먼저 경청해야 한다
교회 안의 질투와 경쟁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위험한 방식은 그것을 곧바로 정죄하는 것이다. 질투가 건강한 감정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질투를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마음 가지면 안 된다’,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 질투의 감정을 더 깊이 은폐한다. 그 은폐된 감정은 변화되지도 않고 오히려 왜곡된 방식으로 계속 공동체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질투를 다루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자기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는 왜 저 사람을 볼 때 불편한가’. ‘내가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은 대체 뭘까?’. ‘나는 정말 저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면 저 사람 앞에서 초라해지는 내 모습이 견디기 어려운건가?’ 이런 질문은 타인과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의 진실을 만나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교회도 이런 질문을 왜곡 없이 하도록 돕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질투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만 모인 공동체는 현실에 없다. 성숙한 공동체는 질투와 경쟁이 없는 공동체가 아닌, 그런 감정을 신앙 뒤에 은폐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성찰하도록 인도하는 공동체, 누군가의 성공 앞에서 내 마음이 흔들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흔들림을 통해 내 안의 상처와 결핍을 보게 안내하는 공동체다.
또한 목회자들은 공동체의 구조가 질투를 부추기고 있지 않은지도 점검해야 한다. 목회자가 특별히 선호하는 특정 교인들만 계속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드러나는 봉사만 높이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인들의 비교를 자극하는 칭찬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지, 사역을 통해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교회가 의도하지 않게 경쟁의 구조를 만들고 있다면, 개인의 경건만 강조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교회 안의 질투는 세속적 경쟁심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단편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신앙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도구로 변질될 때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다. 질투는 그래서 내 안에서 무엇이 흔들리고 있는지, 갈등을 촉발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로 이해될 수 있다. 질투를 느낀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정죄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제 질투의 감정이 우리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